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의 ‘프리즈 서울’과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화랑협회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서울’ 동시 개막을 앞두고 미술계 안팎이 들썩이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는 프리즈와 21회째인 KIAF(키아프)에는 세계 유명 갤러리 등 국내외 350여개 화랑이 참여한다. 초고가의 역사적 작품부터 현대미술 전 장르의 수천여 점이 새 주인을 찾아 출품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로 국내외 컬렉터와 일반 애호가들, 작가 등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전시·판매가 이뤄지는 아트페어 행사장 안팎에서는 기획전, 작가와의 대화. 강연회 등 갖가지 행사도 풍성하다. 해외 미술계 인사·작가들의 방한 속에 한국미술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두 아트페어가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더 널리 알리고, 미술시장 확대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 국내서 열리는 가장 큰 미술품 장터
공동 협력을 통해 열리는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9월 2일 VIP 대상의 개막을 시작으로 프리즈는 코엑스 3층에서 5일까지, 키아프는 1층에서 6일까지 이어진다.
프리즈는 영국에서 시작된 아트페어로 스위스의 ‘아트 바젤(Art Basel)’, 프랑스의 ‘피악(FIAC)’과 함께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3대 국제 아트페어다. 프리즈 서울에는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화이트큐브 등 해외 107개·국내 12개 화랑이 참여, 각자 부스를 운영한다. 행사장은 크게 본행사, 프리즈마스터즈(FriezeMasters),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로 구성된다. 본행사에는 리처드 세라·데미안 허스트(가고시안)와 루이스 브루주아·조지 콘도(하우저앤워스) 등 유명 작가부터 신진 작가까지 다양한 작품이 나온다. 국내 갤러리는 국제·리안·바톤·PKM·아라리오·원앤제이·조현·제이슨함이 국내외 작가 작품으로 참여한다.
프리즈마스터즈는 미술사를 수놓은 옛 거장부터 20세기 후반 작품이 선보인다. 피카소·마티스·자코메티·리히텐슈타인·솔 르윗·백남준·데이비드 호크니·에곤 실레 등이 대표적이다. 16세기 유럽 지도 등 고지도도 나온다. 국내 갤러리는 현대·학고재가 참여한다. 포커스 아시아는 아시아 기반의 신생 화랑들이 주축으로 국내에선 P21, 휘슬이 각각 류성실·배헤윰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별행사로는 ‘팬데믹 이후 변화하는 미술,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미술시장 동향 전망, 인공지능(AI)같은 기술과 예술의 관계 등 미술계의 뜨거운 의제 9개를 다루는 토론회(키아프 공동주최)를 비롯해 한국과 한국계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영상작품을 소개하는 ‘프리즈 필름’ 등이 있다. 개막에 앞서 26일부터 온라인으로 출품작을 살펴보는 ‘프리즈 뷰잉룸’이 열리고, 29일부터는 국내 갤러리들의 야간 개장 등 ‘프리즈 위크(Frieze Week)’도 추진된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인 패트릭 리는 “서울 전역에서 활발한 문화활동이 벌어질 것”이라며 “서울을 찾은 관람객들이 문화 간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와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아트페어인 키아프에는 해외 화랑 60개 등 17개국 164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장르와 지역·세대를 초월하는 국내외 작가 작품들의 대거 출품은 물론 특별전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도 마련된다.
특히 올해에는 키아프 본행사에 더해 별도 아트페어인 ‘키아프 플러스’가 마련돼 11개국 73개 갤러리가 9월 1~5일까지 세텍(SETEC)에서 출품작을 선보인다. ‘키아프 플러스’는 새로운 감각을 표방하는 젊은 화랑들의 뉴미디어와 NFT 등 신선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플러스에 참여한 갤러리만 총 350여개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가 마련된 셈이다. 두 아트페어 통합 입장권 등도 발매 중이다.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올해 키아프는 키아프 플러스가 더해지고 관심 가질 만한 관련 행사들도 마련되는 등 규모가 확대됐다”며 “특히 프리즈 서울과 함께 열리는 만큼 미술에 관심 있는 모두의 즐거운 문화향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위성 특별전·행사들도 눈길
국제적 주목을 받는 아트페어에 맞춰 다채로운 기획전 등도 마련된다. 특히 한국미술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경매사와 외국계 갤러리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글로벌 경매사인 크리스티는 기획전 ‘플래시 앤드 소울: 베이컨/게니’(Flesh and Soul: Bacon/Ghenie)를 9월 3~5일 서울 분더샵 청담에서 연다. 영국 현대미술 대표작가로 표현주의 거장인 프랜시스 베이컨(1909~92), 국제적 주목을 받는 루마니아 작가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 16점이 나온다. 출품작 평가액이 약 5800억원에 이르는 전시이자, 경매 목적이 아닌 크리스티의 첫 기획전이다. 베이컨의 유명한 교황 시리즈 중 ‘교황을 위한 습작 I’(Study for a Pope I), 게니가 예술품 약탈범의 상징인 독일 나치의 괴링을 은유한 ‘컬렉터 3’(The Collector 3) 등이 나온다. 크리스티의 기욤 세루티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들도 방한한다. 크리스티코리아 이학준 대표는 “크리스티는 글로벌 경매사 중 유일하게 한국 고미술을 다루며, 김환기 등 근현대 작가들의 작가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기획전과 주요 임원들의 방한은 한국 컬렉터들과의 활발한 교류, 미술시장에 대한 기대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필립스옥션도 작가 23명이 참여하는 첫 기획전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를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이유진갤러리에서 연다.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양대 경매사인 소더비도 이르면 10월에 서울사무소를 연다. 1990년 외국계 경매사로는 처음 한국에 진출했다가 2000년대 초 철수한뒤 한국미술시장 기대에 따라 재진출하는 것이다.
국내외 갤러리들도 아트페어 부스 운영과 함께 갤러리 전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계 페로탕(Perrotin)은 27일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국내 두번째 전시공간 ‘페로탕 도산파크’를 개관한다. 국내외 작가를 활발하게 소개해온 페로탕이 삼청동에 이어 6년만에 외국계 화랑으로는 처음 2호점을 여는 것이다. 페로탕 관계자는 “강북과 강남의 연결 등 상호보완적 위치에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미술계와의 유대 강화를 위한 취지”라고 말했다. 개관 기념전으로 영국계 미국 작가 엠마 웹스터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페이스갤러리는 명상적 추상화로 유명한 아그네스 마틴 작품을 중심으로 아트페어 부스를 구성하고, 갤러리에서는 9월 1일부터 아드리안 게니와 팀랩(teamLab)전을 열며 특별 문화공간도 마련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9월 1일부터 국제적 인기 작가인 안젤름 키퍼 개인전을 열며, 미국의 데이비드 코단스키갤러리는 국내 첫 팝업 전시를 9월 5일까지 서울 이태원 스튜디오 콘트라스트에서 열고 있다. 샤넬 코리아는 프리즈와 함께 국내 작가 6명의 영상콘텐츠 ‘나우 & 넥스트’(NOW & NEXT)를 제작, 29일부터 공개한다.
아트페어에 맞춰 뚝섬한강공원 일대에서는 조각가 302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야외조각전 ‘2022 한강조각프로젝트 낙락유람(樂樂遊覽)’이 9월 21일까지 열린다. 한국 조각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의 ‘K-조각조직위원회’(위원장 윤영달)가 크라운해태제과·서울시와 함께 마련한 조각전이다. “한국 조각의 아름다움, 작품들을 글로벌 미술 관계자들에게 선보이는 귀중한 기회”(김성호 총감독)이자 “K-조각이 더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예술이 되기를 기대”(윤영달 위원장)하는 자리다. 전시회와 함께 국악 공연 ‘낙락음악회’도 9월 3일과 17일 열린다.
현대미술가 55명의 회화와 미디어·공예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The ARTPLACE HMC 2022-Welcome FRIEZE’도 2~6일 아트페어 행사장 인근의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센터’에서 열린다. 한무컨벤션(주)과 아이프(aif)미술경영연구소가 공동 개최하며 전시와 더불어 작가와 대화, 특별 강연 등도 마련됐다. 한국 전통·현대 미술이 공존하는 서울 인사동에서는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가 31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린다.
■ 한국 미술시장 체질 개선의 계기돼야
미술계 안팎에서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 개최에 기대가 높은 것은 한국 미술시장이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국내는 MZ세대 등을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여기에 프리즈 서울로 방한하는 해외 유명 화랑·컬렉터 등의 한국 미술 전반과 작가들 주목도가 높아지고, 키아프 매출도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번 아트페어를 발판으로 한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달성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이번 키아프 매출이 작년 650억원의 3배 이상 늘어나 우리 미술시장 규모가 올해 사상 처음 1조원대 돌파가 예상된다”며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 자리가 위태로운 홍콩, 새로 부상하는 싱가포르를 대신해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 허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려도 만만찮다. 키아프가 프리즈와 함께 열리면서 관심을 더 모으지만 실속적인 면에서는 프리즈 위세에 눌려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 나아가 자본력과 컬렉터·작가군 등 관련 네트워크가 훨씬 좋은 외국 갤러리·경매사들이 시장 전반을 장악할 수 있다. 한 주요 화랑 대표는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은 모두가 바란다”며 “다만 세계적 화랑들에 비해 여러모로 취약한 점이 있는 국내 화랑들로선 안방 시장을 내줄 수도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와 관련, “국내 컬렉터층의 해외 작가 선호도가 높은 게 걱정의 요인”이라며 “국내 컬렉터층을 오히려 해외 화랑들에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프리즈 서울을 국내 미술시장의 유통 구조 개선, 유망한 신진 작가들의 적극적 발굴과 육성, 기존 컬렉터와의 신뢰도 제고, 신규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미술시장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 전반적인 체질 개선과 투자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